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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몽

중국 문호 루쉰이 제자 쉬광핑에게 쓴 편지.

by luvlee 2024. 11. 19.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가지 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적 선생도 통곡하다 돌아 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 자도 괜찮을 만한 길 하나를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달라 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 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허리띠로 몸을 꽁꽁 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 입 물어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 선생도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길에서는 갈림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 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아직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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