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 글을 읽고_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나는 열다섯 이후로 지금껏 모래성이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우수수 무너져버리는.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든 것 같다. 갈수록 더 작은 땅의 진동에도, 더 가벼운 손짓에도 스러져 내린다. 더 이상 누군가 나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버티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제는 아예 무너져 있고 싶은데, 그러려면 나를 어디까지 버려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놓아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나를 미워하고 괴롭혀야 하는 걸까.-29,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 숲 #43814. 범인들은 정신의학적으로 질병을 가졌을 수 있고, 그 질병이 범죄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행위가 왜 '하필이면 그렇게' 전개되었는가이다. 사건 사고의 원인을 그저 질병으로 환원하는 것만큼 간.. 2024. 9. 19. 글을 읽고_체공녀 강주룡(박서련)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 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7 모든 것이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게 보인다. 작고 우습다. 무엇에 그토록 성이 났었는가도 잊힐 만큼 만사만물이 멀게 느껴진다.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나 또한 그렇게 작아지겠지. 다시 사소한 것에 화가 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겠지. ……주룡은 그것이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외로움을 곱씹는다. 오래 골몰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33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 2024. 9. 19. 글을 읽고_딸에 대하여(김혜진) 젓가락으로 굵은 면발 하나를 건져 먹는다. 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 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8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 2024. 9. 1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