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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의 품

글을 읽고_이방인(알베르카뮈)

by luvlee 2024. 9. 20.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21


"천천히 가면 더위를 먹을 우려가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성당 안에 들어가면 으슬으슬 춥답니다."

그 말이 옳았다.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36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 하기에, 나는 "어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흠칫 뒤로 물러섰으나, 아무런 나무람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나는 창문을 닫았고, 방 안으로 돌아오다가 거울 속에 알코올램프와 빵 조각이 나란히 놓여있는 테이블 한끝이 비친 것을 보았다.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45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하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67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85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없다는 것, 조금도 다른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고 또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92


그 당시 나는, 만약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의 표면을 바라보는 것밖에 다른 일이라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 나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104


모든 것이 사실이라지만,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121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는 데서 맛보는 흥미는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관심을 끌거나 흥미를 일으킨 것은 다만 단편적인 말들, 몸짓들, 혹은 전체와는 동떨어진 한 토막의 장광설, 그러한 것들뿐이었다.-130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143

 

죽었다면 마리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못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147

 

어쨌든 나는 실제로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을는지도 모르겠으나,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148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특권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 받을 것이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152-155 부분.


"우리들 각자는 최대한의 삶과 경험을 쌓아가지만 결국 그 경험의 무용함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만다. 무용함의 감정이야말로 그 경험의 가장 심오한 표현인 것이다."-179

"행동의 한복판에서 행동에 가담하는 가운데서도 그는 행동에서 저만큼 떨어져 있었다."-180

죽음은 우선 '몸'의 문제다.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속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육체에는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내일 없는' 현재의 가득함. 이것을 카뮈는 '희망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183

"그렇다, 모든 것은 단순하다. 사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들이다."

"우리 모두가 다른 문제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세련된 의견이 분분하면서도 죽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매우 빈약하다."-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