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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의 품

글을 읽고_바늘과 가죽의 시(詩) (구병모)

by luvlee 2024. 9. 22.

백 아니면 흑.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그들.
'아니면'의 자리에 '과'나 '와'가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간혹 짝지어서 불리는 예외도 있는데 죽음과 삶을 가리킬 때.
죽음과 같은 삶. 삶이자 죽음. 생명이 거한 곳에 어김없이 절반의 지분을 차지한, 삶과 죽음.-12


살아남는다 치면 그 영속성이, 그러나 영원한지는 알 수 없는 고작 그뿐인 지속성이 주는 의미란 무엇이겠는지를, 묻지 않는다.-39


사람들이 통틀어 옛날이야기라고 부르는 전설이나 신화, 민담에는 그런 이들 천지다. 저주와 천대와 박해를 받지만 사실은 유능하거나 은밀한 축복을 받은 이들이, 잘난 척하다 곤경에 빠진 친인척을 구해내고 기운 집안의 부를 일구거나 마을을 구한다. 미아는 형제들과 세상을 거닐 적에 그런 인간들을 비롯하여 그런 인간들을 부리고 버리는 인간들을 숱하게 만나보았으며, 그들에게서 삶의 대처 방식을…… 무엇보다 인간의 바닥을 배웠다.-64


보편적인 패턴이다. 극소수만이 정상에 도달할 기회와 권리를 획득하며 그 이하로는 빠르게 부정과 망각의 대상이 되는.-72


키가 자라고 만질 수도 있고 저마다의 몸에 품었던 묘향은 극히 일부만 남은 채 개인적 특성을 지닌 냄새를 풍기며, 무엇보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을 가지고, 이름으로 존재를 규정함으로써 원래의 존재가 내포하고 있던 수만의 속성이 축약된다는 생각에는 미처 이르지 못한 채, 실재와 환영이 뒤섞인 길을 떠난다. 세상의 물결에 속해 흐를 수 있고 가끔 머물러야 할 곳에라면 고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딧불이만 한 믿음을 갖고.
그렇게 언젠가 환영이 실재에 압살당할 때까지.-83


삶이나 사랑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어디까지나 그것과 충분한 거리를 둘 때 발생하는 것이었다.-92


객관적 최고는 아닌 주관적 최선의 상태.-101


사람과의 인연 같은 건 힘주어 잡아당기면 찢어지는 곤충의 투명한 날개에 불과하다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누구도 만나지 않은 것과 같다. 너무 많은 인연을 마주치면 그 누구와도 매듭을 맺지 못한다. 방대한 기억이 축적되면 피치 못하게 변형이 생기고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않는다, 에 가까울 것이다. 언젠가는 부서지게 마련이라면 처음부터 의미를 두지 않음으로써, 내구력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삶과 타협하고 감정적 휴전을 맞이한다.-105


안이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이미 무의미해진 것이라 한다면 그 무의미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생략) 더는 쓸데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완성시키면 안 되나?"
시인의 마지막 마디는 대화의 일부라기보다는 혼자만의 다짐에 가깝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예요.", "선생님은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이걸 꿰매는 동안 제가 좋았으니까."-141,142


어쩌면 신은 존재로 하여금 또 다른 존재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비롯한 절망만을 존재 안에 배열했을 뿐.-147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돼."-149


안은 생각한다. 한때 우리는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다. 우리는 명사인 동시에 동사였다.
모두 하나처럼 보이는 동시에 서로 다른 음계를 지닌, 과거이면서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인것도 같으나 실은 시간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들이 빚어내는 음악의 일부였다.-151


살아있는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는 살아 있는 것이 뿜어내는 모든 것들의 유효기간이 어쩌면 이리 짧은가.…… 하나의 동작은 한 송이의 꽃과 같아, 개화를 시작하여 이어지는 순간만 살아 있고 동작이 완결되는 순간 소멸한다. 음악은 그것이 연주되는 동안만 살아 있으며 사실상 연주라는 것은 소리가 자신의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행위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차라리 생겨나지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162


가뭇없이 사라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불이 밝혀진 몸으로 심지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허공에 자신의 움직임을 그려 넣고자 하는 인간의 열의는, 존재들이 어떤 신념이나 의지 같은 개념이 없이 수행하던 삶속의 이치들을 닮은 것 같다. 신이 그리하라고 명한 게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길 없는 행위들을.-163


안은 오전의 작업대에서 저부를 진행하다 놔두고 온 신규 고객의 주문 제작 구두를 떠올린다. 오래도록 빛과 바람과 물에 닿고 휘어지고 꺾어지며 언젠가는 한 줌의 먼지가 될 것을 알면서도 구두장이는 슈크림과 물을 발라가며 가죽 표면에 광을낸다. 그보다 더 빨리 닳아 없어질 밑창과 깔창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오래가게 하기 위해 더욱 질 좋은 가죽으로 고르고 어떤 방식으로 무두질했는지에 신경을 쓴다. …… 그러니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것은 찰나의 지속 반복이자 지연된 소멸의 결과물이다.-164


이 생에서 두 번을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사라져가는 시간을, 닳아져가는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주어야 한다는.
물을 머금어본 적 없이 방치되어 말라비틀어진 씨앗 같은 기억에, 이제라도 솜을 깔고 현재를 분무해주어야 한다는.
그 행위가 비록 무용하더라도, 씨앗을 간직해온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인지도 모른다.-168


미아, 너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젠가 네가 혼자가 되더라도 사실은 처음부터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우리에게 찰나에 불과한 시간만을 머물렀다가 부서지고 사라질 세상의 모든 것을 붙들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뻗고야 마는 손을,
변함없이 바늘을 쥐는 손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고.-170


더는 쓸데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완성시키면 안 되나.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을 찾아가는 듯 하다.
유한은 유한이라, 그 자체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