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기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이 황급히 닫히고, 단단히 빗장이 질려 차단되었다. 등뒤에서 난 갑작스러운 소음에 그레 고르는 너무도 놀라 그의 작은 다리들이 휘청 오그라들었다. 그렇게도 서둔 것은 누이동생이었다. 똑바로 벌써부터 거기 일어서서 기다렸다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튀어 왔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이 오는 소리조차 못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문 속에 꽂힌 열쇠를 돌려 잠그며 누이는 「마침내!」 하고 부모를 향해 소리쳤다.
「그럼 이제 어쩐다?」 자문하며 그레고르는 어둠 속을 둘러보 았다. 곧 그는 자기가 이제는 도무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발견했다. 그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이 가느다란 작은 다리를 가지고 실제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는 제법 쾌적하게 느꼈다. 온몸이 아프기는 했으나, 고통이 점점 약해져 가다가 마침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등에 박힌 썩은 사과와, 온통 부드러운 먼지로 덮인 곪은 언저리도 그는 어느덧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감동과 사랑으로써 식구들을 회상했다.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데 대한 그의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한결 더 단호했다. 시계탑의 시계가 새벽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내내 이런 텅 비고 평화로운 숙고의 상태였다. 사위가 밝아 지기 시작하는 것도 그는 보았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힘없이 떨어졌고 그의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약하게 흘러나왔다. -72,73
해충으로 변해버린 집안의 가장 그레고르. 가족에게 헌신하며 생활을 책임져왔지만 해충으로 변하자 가족들은 그를 더이상 “쓸모있는”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해충. 말 그대로 인간의 생활에 해를 끼치는 벌레로 취급한다.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표현할 때 유독 몸통에 비해 힘없는 여러개의 다리들의 움직임이 자주 설명되는데 그것은 집단에서 소외된 “한 사람”이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으려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무가치함에 쏟아지는 혐오. 이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 존재 자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잔인하게도 여실히 보여준다. 가치는 “필요성”에 의해 값이 매겨진다. 그래서 해충으로 표현한들 그게 괴랄한 상상에 의해서만 쓰여진 글이 아니라는 것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밀려나고 끝내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묵직한 압박과 손가락질마저 느껴지는, 실제를 너무 꼬집어내기에 작가의 통찰력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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