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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의 품

글을 읽고_동물농장(조지오웰)

by luvlee 2024. 11. 17.

일곱 계명

1.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다.
3.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모든 동물은 평등하다.-28


"저기 저 위에 말이야, 동무들." 그는 커다란 부리로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하곤 했다. "저 검은 구름 너머에 말이야, 우리 불쌍한 동물들이 영원히 노동에서 해방되어 편안히 쉴 수 있는 슈거캔디산이 있어!" 자기가 언젠가 한번 하늘 높이 날다가 실제로 그 나라에 들어가 본 적이 있고 거기서 사시장철 클로버와 아마씨케이크가 자라는 풀밭과 각설탕이 자라는 울타리도 제 눈으로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많은 동물들이 그 말을 믿었다. 그들 생각에는 지금 그들이 배고프고 몸 고달픈 이승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어딘가 더 나은 세상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옳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112


오직 늙은 당나귀 벤저민만은 자신의 긴 생애를 한 토막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인즉 지금의 사정이 옛날보다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지 않을 것이며 굶주림과 고생과 실망은 삶의 바꿀 수 없는 법칙이라는 것이었다.-124


"이젠 눈이 보이지 않는군." 한참만에 클로버가 말했다. "젊을 때도 난 저기 쓰여 있는 글들을 읽지 못했어. 그런데 저 벽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곱 계명이 그대로 있긴 있는 거야?" 벤저민은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 한 번만은 깨기로 하고 벽에 쓰여 있는 글들을 클로버에게 읽어주었다. 일곱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128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
이 '명언'에 온 좌중이 함성을 질렀다.-132


동물들이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 같은데 뭐가 변한 것일까? 클로버의 침침한 눈이 이 돼지에서 저 돼지로 옮겨 다녔다. 어떤 돼지는 턱이 다섯 개, 어떤 돼지는 네 개, 또 어떤 돼지는 세개였다. 돼지들의 얼굴에서 뭔가가 녹아내리고 변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135


풍자는 무엇보다 당대성의 서사 장르이다.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 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이다. 당대의 것들에 대한 비판, 공격, 희화화가 아니라면 풍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풍자는 동시에 약자의 서사이다. 이 약자는 권력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기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약자이다. 약자의 이야기이므로 풍자가 두들기는 대상은 권력을 쥔 부당한 강자,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기, 지배적 제도와 관행이다.-158,159


​부패한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 권력형 돼지들도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 집단의 알레고리이다.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고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 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라는데 있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162,163


인간의 모든 혁명은 반드시 그것의 당초 약속을 배반하게 되는가?
모든 혁명의 성과는 권력에 주린 지배 엘리트 돼지들의 손에 반드시 장악되는가?
권력의 타락은 인간 사회의 불가피한 조건인가?

역사상 많은 정치적, 사회적 혁명들이 타락하고 이 타락이 인간사회의 운명적 조건 같아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부터 "모든 혁명은 반드시 타락한다."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까? 동물 농장이 함축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이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169,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