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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의 품

글을 읽고_바빌론의 탑_단편집 중 일부(테드창)

by luvlee 2024. 11. 13.

그의 오감은 반란을 일으키며 그 어떤 물체도 이토록 높게 솟아 있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탑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대지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저런 곳에 올라가도 되는 것일까?-19


"수레를 소중히 다루게.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많이 탑을 오른 수레라네."
"자넨 이 수레가 부러운가?" 난니가 물었다.
"아니. 꼭대기에 올라갈 때마다 그 수레는 다시 제일 아래층까지 내려와야 해.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거야."-25


태양이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세상의 가장자리 아래로 넘어가면서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괜찮은 구경거리였지, 안 그런가?" 쿠다가 물었다. 힐라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27


탑을 오르는 여정의 이 단계에서 힐라룸은 몇 번이나 절망감에 사로 잡혔다. 알고 지내던 세계를 떠나보내고, 그 세계와 소원해진 듯한 느낌이 그를 괴롭혔다. 대지는 불충의 죄로 그를 추방하고, 하늘은 그를 거부하는 기분이었다. 야훼가 어떤 징조를, 인간의 이 역사를 승인한다는 확답을 내려주기를 그는 갈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을 결코 따뜻이 환영해주지 않는 이런 장소에 어떻게 계속 머물러 있는단 말인가?
이 고도에 사는 탑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광부들을 향해 따스한 인사를 건넸고, 천장에서의 작업이 잘 풀리도록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들은 축축한 구름 아지랑이 속에서 살았고, 아래에서 올라오거나 위에서 내려오는 폭풍우를 바라보는 데도 익숙했다. 공중에서 작물을 수확했고, 이곳이 인간이 있기에 적절치 않은 곳이라는 두려움도 없었다. 신의 약속도 격려도 받을 수 없었지만, 주민들은 단 한 순간도 의구심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30



머리 바로 위에는 세계 그 자체의 천장이 있었다. 이것은 하늘의 경계를 이루는 절대적인 상한선이었고, 그들이 있는 장소의 전망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임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단박에 이해 가능한 천지창조가 모두 이곳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제관들이 야훼를 향한 기도를 선도했다. 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신에게 감사했고, 그 이상을 보고 싶다는 자신들의 욕망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36


아후니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야훼여, 우리를 구해주소서." 세 사람은 점점 높아만 가는 물속에 서서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힐라룸은 이것이 헛된 노력임을 알고 있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야훼는 탑을 짓거나 천장을 뚫으라고 인간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탑을 건설한다는 선택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었고, 그들은 다른 인간들이 지상에서 일하다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일을 하다가 죽어가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정당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행위의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줄 수는 없었다.-45


그는 하늘의 저수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지상에 도착했다. 야훼는 그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그를 이곳으로 되돌려놓은 것일까? 그러나 힐라룸은 야훼가 그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어떤 징조도 보지 못했다. 야훼가 그를 이곳에 되돌려놓기 위해 행한 어떤 기적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이해하는 한, 그는 단지 하늘의 천장에서 위로 헤엄쳐 하계의 동굴로 들어간 것뿐이었다.
...... .
이제는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50,51



신은 그저 관망하고 인간은 욕망할 뿐. 욕망을 용서해달라 신에게 비는 것조차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신은 바라본다. 갖은 상황 속 갖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어쩌면 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전제조차 오만한 인간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원통형 인장>과 <착각>